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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본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문장
p.11 아니, 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자신이 그가 몹시 싫어하는 악착스럽고 독점욕 강한 여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그에게 할 수 없으리라.
p.16 그녀는 완벽한 안정감과 더부어 자신이 그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있음을 느꼈다. 로제 이외의 누군가를 사귀는 일 같은 건 결코 할 수 없으리라. 그녀는 그런 안정감에서 서글픈 행복을 끌어 냈다. 그들은 춤을 추었다. 그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스스로에게 몹시 만족한 모습으로 아무 리듬도 없이 무대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로질렀다. 그녀는 무척 행복했다.
p.45 산책의 동반자든 인생의 동반자든,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언제나 애정을 느꼈다. 그들, 무척 다른 동시에 아주 가까운 그들이 그녀 자신보다 더 훌륭하다는데에 대한 감사 같은 것이었다. (중략) 한 여자의 삶에 세 동반자들이 있었다는 것, 그것도 모두 좋은 동반자들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하지 않은가?
p.46 그 자신이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존재라는 강한 자유의 냄새를 맡는 순간, 그녀는 또다시 그를 잃고 말리라.
p.49 여자는 킬킬거리며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사랑도 어리석게 이루어질 수 있군 하고 그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p.56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입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같은 걸 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p.57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 준다.
p.73 '저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는 질투심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서만 가질 수 있는 권리하고 생각합니다.
(중략) 당신이 다시는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당신의 시몽.'
p.75 그는 정직했다. 하지만 이렇게 뒤얽힌 삶 속에서 그런 정직성만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는게 아닐까 하고 그녀는 자문했다. 필요할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한다 해도 말이다.
p.80 그는 그 구절로 인해 자신이 지나친 기대를 품었다는 사실보다, 그 구절을 읽고 어리석게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확신에 찼었다는 사실에 더 유감스러웠다. 그는 잘못 알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p.86 로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고 자기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었다. 그가 확신하는 유일한 것은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폴의 사랑이었고 몇 년전부터 그녀에게 집착해 온 자기 자신의 마음뿐이었다.
p.92 이 모든 것이 그가 기득권자로서 갖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취한 조심스런 행동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폴은 차에서 내린 다음 나직하게 "잘 가."라고 인사하고는 길을 건넜다. 로제는 즉각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p.94 '나는 당신을 힘들게 할 거예요. 당신에게 강한 애착을 갖고 있거든요.' 그녀는 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시몽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폴이 자기를 동정한다고 여겼다.
p.95 그러자 장면 하나하나가 되살아났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 하나하나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날이 갔고, 그는 그 시간을 모았다. 아니, 그는 삶을 잃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p.97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설사 그것이 그녀를 통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다.
p.98 "저는 정말이지 당신 없이는 못 살겠어요. 그동안 저는 공허함속에서 왔다 갔다 했을 뿐이에요. 권태를 느낄 수조차 없었어요. 저 자신을 박탈당해 버렸어요. 당신은요?"
p.101 시몽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은 완벽한 어떤 것, 적어도 어떤 것의 완벽한 절반이었다. 이런 일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야 완벽하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줄곧 앞장서는 입장, 대개 혼자 애쓰는 입장이 되어 있었고, 이제 그 일에 지쳐 있었다. 그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시몽은 사랑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그 말이 유난히 특이하게 여겨졌다.
p.107 그는 행복한 몽유병자처럼 행동했고, 폴은 그런 모습에 감동해 그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돌연 그런 일이 그녀 자신에게는 거의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여겨지는 데 깜짝 놀랐다.
p.109 이제 시몽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그녀 자신보다도 미리 알아채곤 했는데, 그것은 의무하기 보다는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p.119 '상대를 자기 자신만큼 소중히 여기는 건 폴과 나의 경우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는 맛을 잃어버린 것이다.
p.132 "나는 그걸 문제 삼고 있는 게 아냐. 오히려 당신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게 하려는 거야. 당신은 당연히 내게 그런 일을 감추고 싶겠지. 하지만 내게 그런 걸 감출 필요가 없어. 나는 어린애가 아냐, 폴. 내게는 당신을 이해할 능력도, 당신을 도울 능력도 있어. 알다시피 난 지금 당신과 함께 있어서 무처 행복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 이상이야. 난 당신도 나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 당신은 행복해지기에는 지나치게 로제에게 집착하고 있어. 당신은 우리의 사랑을 우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해.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p.139 그녀는 로제를 가리켜 '그'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그들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p.154 사강의 작품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이다. 실제로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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